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츠에 소요 사건 (문단 편집) == 여담 == * 오카자키가 벌인 사건으로 지사직을 사임하게 된 야마다 다케오는 이후 여관 주인 등을 전전하며 요코하마 교외에서 조용하게 살다 죽었다. 오카자키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었지만 자신도 내심 미국에 대한 '''철저항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한다. * 여담으로 주범 오카자키가 [[극우]]임에도 일제 당국에 사상범으로 몰려 투옥되고 감시 대상이 된 까닭은 오카자키가 '''[[도조 히데키]] 암살'''을 모의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개전의 책임이 큰 도조 히데키가 전황이 불리해지니 총리 자리를 내던지고 도망친다고 여겼기 때문. 사실 도조가 총리직을 사임한 까닭은 패전의 책임을 져야 하기도 했고 도조의 정치적 반대파들은 물론 지지세력 일각에서도 도조의 사직을 주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조 본인은 말이 사직이지 어차피 육군과 정부 고위직에 남아 있었던 자기 파벌을 통해 막후에서 절대권력을 부리는 게 가능했기 때문에 총리직을 생각보다 쉽게 내려놓았다. * 이 사건을 다룬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와 그것을 번역한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는 알찬글로 등록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대체적으로 '[[병신같지만 멋있어|의도는 병맛이지만 저돌적인 자세는 본받아야]]' 같은 식으로 두둔하는 편. 반면 꽤 비중 있는 반동 운동임에도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듯하다. 한국에서 일본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잘 다루지 않는 사건이다. * 2013년 10월 6일 한국의 독도 관련 시민단체 '독도 일본 알리기 운동연대'에서 시마네현에 가서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독도 편입 문서]]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터졌는데 '''68년 전에 일어난 화재로 인해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행정 문서 원본이 소실되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현재 존재하는 문서는 필기체 기록으로 남아있 는 동년의 다른 기록들과 달리 이후에 '''인쇄기로 뽑아낸 사본'''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1905년)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보다 5년 앞선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년)의 울릉군수 행정문서에 독도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독도가 주인 없는 땅이라 점령했다는 일본의 논리는 성립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워낙 중대한 안건이라 관계자들은 사실인지 재차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1108800148|관련 기사]] 해당 단체 사람들이 직원에게서 들었다는 말에 의하면 화재가 발생한 날짜는 1945년 8월 24일이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관련 문서의 원본을 소실시킨 화재는 마츠에 소요 사건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 [[조선진주군]]은 아무래도 여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분류:제2차 세계 대전/사건사고]][[분류:폭동]][[분류:1945년/사건사고]][[분류:시마네현의 사건사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